3월 푸른전주 생태길탐방 (회안대군)

by (사)푸른전주 posted Jul 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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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산의 전령사< 개암나무 >
 흔히들 봄 산에 제일 먼저 피는 꽃을 생강나무 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제일 먼저 피는 꽃은 개암나무 꽃이다. 단지 개암나무의 수꽃은 나무에 매달린 벌레처럼 두 세 개씩 가지 끝에 축 늘어져 매달려 있어 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암꽃은 피 빛을 띠는 앙증스러운 꽃이지만 워낙 작아 거의 눈에 띠지 않아 개암나무 꽃이  있는지 조차 잘 모른다. 또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헤이즐넛 커피가 개암의 향을 넣어 만든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이 개암나무 잎에는 핏빛 얼룩이 있는데 옛날 그리스에 코리리포라는 예쁜 공주가 있었는데 예쁜 얼굴을 아무 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는데 시녀가 공주의 얼굴을 훔쳐보자 목을 쳐 죽였는데 그때 핏방울이 공주의 얼굴에 튀었고 그 뒤 죽은 시녀의 무덤에 개암나무가 자라고  잎에 핏 자국의 얼룩이 있고 그 때 튄 그 핏방울처럼 가지 끝에 조그만 핏빛 암꽃이 피었다고 한다.
우리의 옛 이야기에 나오는 ‘혹부리 영감과 도깨비 방망이’에서 도깨비를 놀라게 한 ‘딱’소리도 개암을 깨물때 나는 소리다. 개암 깨지는 ‘딱’소리에 놀란 도깨비에 들킨 혹부리 영감은 도깨비에게 붙잡혔으나 꾀를 내어 ‘혹’을 노래주머니라 속이고 도깨비 방망이와 바꿔 부자로 잘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개암은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제사상에 밤 대신 오르기도 했으며 동의보감엔 강장효과와 눈을 밝게 해주는 효력이 있다고 적혀있다.


* 조선 초기의 풍운아 회안대군-이방간  1364년(공민왕13년)~1421(세종3년)
태조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조선왕조의 창업에 힘을 보탰고, 이어 1차 왕자의 난에 방원을 도와 정도전 일파를 제거하여 정사공신이 되었다. 그러나 박포의 충동질에 합세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여 토산에 유배되었다. 이어 안산, 익주, 순천, 익주, 홍주로 배소를 옮겼으나 본인의 원에 의해 전북 완주군 봉동읍 구만리 천래부락에 은거 하였다가 1421년(세종3년)  ‘홍주에서 병들어으로 죽다’라고 실록에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일부 기록에는 왕의 부름을 받고 한양으로 가던 중 은진 여관 에서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일부 호사가들은 독살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무려 567번이나 등장하는 뜨거운 감자요 풍운아였다. 태종은 형 회안대군이 세상을 뜨자 지사 3인을 보내 명당자리를 잡아 현 금상동 법수메에 묻혔으나 귀경한 지사가 자손이 왕이 될 명당자리에 묻혔다고 하자 깜짝 놀란 왕은 왕기의 맥을 끊으라고 하여 맥을 끊었다고 하며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회안대군 묘는 특이하게도 회안대군 묘 바로 앞에 셋째부인 김포 금씨의 무덤이 있는데 이는 금씨 부인이 죽어서도 앞에서 온갖 풍파를 막아주겠다는 일념에서 남긴 유언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2차 왕자의 난으로 인해 공신녹권이 몰수되고 후손들은 왕실 족보인 선원록에서 제외되었으나 후손들의 400여 년간의 끈질긴 신원활동으로 1680년(숙종6년)에 선원록에 다시 올려 져 왕족의 지위를 되챃게 된다.
회안대군의 묘소는 ‘노서하전(老鼠下田)’ 명당으로 앞쪽엔 왕족 중 가장 많은 4만 여명의 자손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