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푸른전주 생태길탐방 (동고산성:전주성)

by (사)푸른전주 posted Jul 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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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성(동고산성)의 잃어버린 이름
-전라북도기념물 제44호-완산구 교동 산9-1,대성동 산25
동고산성은 신라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으로, 건너편의 남고산성을 수축한 관찰사 박윤수의 만억루신건기(萬億樓新建記)란 글에 “남고, 동고(산성)가 서로 맞서서 돌부리가 솟아 만마동 40리의 골짜기를 안고 있다.”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순조 때 건너편의 산성을 “남고산성”이라 부르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예로부터 후백제를 세운 견훤왕의 궁성터 라는 말이 전해왔다. 1668년(숙종14) 성황사를 지금 동고사 터에서 이곳으로 옮기면서 기록한 전주성황사중창기에 “--- 이곳은 바로 견훤의 옛 궁터라고 전해오는 곳이다.”라는 내용이 있으나 그 확증이 없었다. 1980년 조사 시 전주성명연화문와당(全州城銘蓮花紋瓦當)이 발견됨으로써 이곳이 견훤의 궁터임이 확인 되었고 동고산성의 본 이름이 전주성이라는 것이 확인 되었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동고산성의 진짜 이름을 돌려주는 것이 후손된 도리라고 생각된다.  백제 재건의 기치를 든 견훤왕은 신라 효공왕4년(900)에 완산주를 점령하고 이곳에 도읍을 정했다.  그러나 왕위계승 문제로 큰아들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되었다가 탈출하여 왕건에게 귀순하여 왕건의 힘을 빌려 936년 자신이 세운 나라를 멸망시키기까지  전주는 37년 동안 후백제의 수도로 기능하였다.  
포곡식의 산성으로 둘레는 1,574m이다. 남․북으로는 익성(翼城)이 있다. 전면22칸 측면 3칸 총66칸(회랑을  포함하면 88칸) 넓이의 건물터가 조사되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발굴 조사된 단일 건물로는 가장 큰 규모이며, 이것이 견훤왕의 궁성이었음이 확실시 되고 있다.   지금까지 조사된 바에 의하면 동고산성은 통일신라시대 말기부터 고려시대 초기에 해당되는 유물이 출토됨에 따라 견훤이 전주에 정도하여 후백제를 세운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동고산성에서 출토된 ‘全州城’명 기와로 보아 전주시내와 동고산성을 포함하는‘全州城’이라는 도성(都城)을 지칭하는 것으로, 동고산성은 유사시 대피하는 전주의 배후산성으로 추정된다.
비록 건물은 사라지고 터만 남았지만, 후백제를 세운 풍운아 견훤의 발자취가 천년이 지난 오늘 이 시간 까지 느껴지는 곳이다